폭풍이 지나면 고요가 오듯이

2월 말경 영화 '인비저블맨'이 우리나라에 개봉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일일 관객 수 15,000명을 실적으로 몇 주 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극장은 물론 우리가 즐겨 찾던 경기장, 공연장 등 공공 문화 시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에 관객을 투명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누구나 어렸을 적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상상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성인이 되었어도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한 번쯤 꿈꾸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투명 인간처럼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이루고 싶었던 일이란 대체로 정당한 일보다는 짓궂은 장난이나 범죄 행위가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투명 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바로 대답 하지 않고 미소 같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생각에 잠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현실 세계에서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 , , 권력, 이성 관계, 건강, 명예 등과 연결된 다소 은밀한 욕망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투명 인간은 오래전부터 초능력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였지만,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극 중 투명 인간이 행하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어떤 이유가 되었든 간에 요즘 세상엔 저런 투명 인간들이 많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투명 인간은 소재 자체부터 은밀한 욕망의 상징과 같습니다. 과학적으로 투명 인간을 만드는 일은 어렵지만 어떤 의미의 투명 인간이 되기는 의외로 쉽습니다. 인터넷상에서는 많은 투명 인간들이 보이지 않는 익명성에 기대어 자신의 은밀하고 그릇된 욕망을 채우며, 오늘도 투명 인간 행세를 하며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투명 인간의 사촌뻘 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최근 슈퍼전파자가 된 신천지의 신도들이 교인임을 감추고 있을 때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때 질병관리본부가 코로나19 확진자를 쫓기 위해 투명 인간처럼 행적을 감춘 신도들을 찾아 나설 때도 그랬습니다.

 

지난 322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올라온 사진 한 장과 함께 텔레그램 박사방을 운영하며 일명 '박사'라 불린 용의자 조○○에 대해 아시는 분들의 제보를 기다린다는 화면을 보았습니다. 당시 방송에서 조○○를 추적하고 있다는 멘트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며 이 범죄가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텔레그램의 보안성 때문에 조○○의 검거에 어려움이 많아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325일 오전 8시경에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인 N번 방의 박사 조○○는 인비저블맨의 탈을 벗고 온 세상에 그의 민낯을 드러내었습니다. 그가 저지른 잔혹하고 가학적인 범죄 행위와는 달리 아직도 젖살이 빠지지 않은 듯한 얼굴, 예상외로 평범하게 생긴 외모를 보고 잠시 아니, 뭐지하면서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영화 '인비저블맨'에서 그가 신체를 감출 때 오히려 밖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은밀한 욕망에 초점이 맞춰지듯이 용의자 조○○ 역시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확신으로 잠재된 욕망을 분출하고 그것이 영원할 것으로 믿었던 게 틀림이 없습니다. 이처럼 그는 신비의 묘약인 줄 알았던 자신만의 범죄 능력이 그를 파멸로 이끌어 갔다는 것 등이 영화 인비저블맨의 대체적인 줄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정부에서는 범죄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성범죄자들에 대한 가혹한 형벌은 일시적인 방편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디지털 범죄는 또 다른 유형의 범죄로 진화하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괴물이 끊임없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인 것 같습니다.

 

이번 N번방 성범죄사건의 경우 2018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범행으로 인한 피해자는 확인된 것만 미성년자 16명을 포함해 74명에 달하며, ○○ 등 운영진의 연령층 또한 10, 20대라는 점에서 실로 놀랍고 두려운 현실입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정, 사회, 문화 등의 환경적 조건에 적응하면서 독자적인 행동양식을 습득하여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괴물인 이들의 탄생에는 그들만의 잘못만으로 돌릴 수가 없습니다. 분명 우리 사회의 잘못과 책임이 없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IT의 발달에 따라 범행 수법이 다양해지고 수사 환경도 급변하고 있지만 관련 법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법령개정, 범행 기회를 심리적,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정책 마련 등 제도적인 개선과 함께 성교육 문제, 플랫폼 기업과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들의 솔선수범, 특히, 정치인들의 이중적인 행태 개선 등이 함께 해결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구촌 전체가 흉흉한 시점에 N번방 박사 조○○ 사건이 터지니까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이 N번방 디지털 성범죄라고 하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나옵니다.

 

디지털 성범죄와의 싸움은 지금부터입니다.

 

 

 

Posted by neoi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