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면 고요가 오듯이

어느 버스정류소에 붙어 있던 한 광고 포스터를 보고 잠시 멈칫했던 적이 있습니다. “잠은 무덤에서 실컷 자고 나는 성공을 위해 자기계발서를 읽는다라는 문구입니다. 이 포스터가 지향하는 의미를 짐작건대 1990년대 후반까지의 시대에서나 찾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꿀잠이 상품 소재화되고 있는 현시대와 너무나 동떨어진 내용이므로 공감하는 사람이 적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잠에 대한 사고가 달라도 너무 다른 것도 문제지만, 잠자지 말고 읽으라는 책이 고작 자기계발서라니 ! 거기에다 시민의 삶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감성적 기능 공간인 버스정류장에 버젓이 이 광고가 게시되고 있으니 과연 적절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 인생의 1/3이 잠으로 채워진다고 하여 위 광고처럼 일부가 잠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예부터 잠이 보약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세 가지인 의··주 중에서 주는 쉬고 잘 수 있는 집을 가리키는 데 이 말에서도 잠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의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잠이 건강에 미치는 실제적인 영향에 대해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의 영향인지 몰라도 최근에는 수면 산업, 말 그대로 ''과 관련된 산업이 뜨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우리가 바쁜 현대생활에 쫓기다 보니 잠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삶 자체가 바쁘기도 하지만, 대개 흔하고 반복적이면 소홀이 취급하는 경향이 있듯이 잠을 자는 행위가 습관적. 반복적으로 행해짐에 따라 중요하다거나 특별한 의미가 감소하여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잠을 잘 자면 정신이 맑아지고 그렇지 못하면 멍해지면서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을 경험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이 겪는 수면 부족, 하지만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될 것입니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비극적인 사고 중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역사상 최악의 핵 재난이었다고 평가되는 1986426일 구소련의 체르노빌원전 사고. 1986128일 우주선 챌린저호 폭발사고 등은 모두 수면 부족으로 인한 담당자 실수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적정 수면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피로가 쌓여 집중력이 떨어지고 노동 현장에서 심각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신경 과학자인 제프 리프(Jeff Iliff) 박사가 TED Talks에서 뇌는 겨우 인체 질량의 2%만 차지하지만, 인체의 공급되는 총 에너지의 25%를 소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모든 세포가 영양소를 연료로 사용하게 되면 세포 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노폐물을 배출해야 합니다.

 

여기서 배출된 노폐물을 처리하는 기능이 림프계입니다. 이 림프계가 우리 온몸에 퍼져있어 제2의 혈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세포 사이에서 찌꺼기를 모아 혈관에 버림으로써 노폐물을 처리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뇌에는 림프관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뇌는 독특한 방법으로 노폐물을 처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뇌에 퍼져있는 무색투명의 액체인 뇌척수액입니다. 뇌척수액이 뇌를 통과해 뇌 내부로 밀려 들어갑니다. 뇌척수액이 혈관 표면을 따라서 이동하면서 뇌세포 사이에 많은 노폐물을 청소한다고 합니다. 그 방식이 림프계와 비슷합니다. 즉 뇌의 내부 노폐물은 외부의 뇌척수액으로 이동되어 혈관으로 버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이처럼 중요한 기능을 가진 뇌척수액의 활동이 잠을 잘 때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뇌가 깨어 있을때 즉, 뇌가 가장 바쁠 땐 버려질 노폐물들을 세포에 방치합니다. 그리고 뇌가 잠이들면 즉, 뇌가 한가해지면 청소 모드로 변경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뇌세포 사이에 쌓인 그 날의 노폐물을 청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사는 동안 매일 밤 잠을 잡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절대 쉬지 않고 우리가 잠든 사이에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야 할 시간에 끙끙 앓는 문제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여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머리의 노폐물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노폐물이 그대로 쌓이게 되어 치매도 오고 뇌의 이상도 오게 된다고 합니다.

 

잠을 쫓기 위한 커피나 다양한 각성제가 최근에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데, 각성제 장기복용은 뇌에 노폐물이 쌓이게 하여 뇌 이상을 초래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울증이나 정신질환 등도 뇌에 해로운 물질이 쌓인 것으로 의심된다고 합니다. 우울증이나 정신장애를 약으로 치료하지 말고 좋은 수면 시간과 수면의 질에 관심을 두는 것이 적절하다고 합니다.

 

최근 독일 연구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인체의 T세포는 면역반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백혈구의 한 종류로 알려져 있는데, 잠이 T세포 반응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잘 자는데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슬리포노믹스는 ’(sleep)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바쁜 현대인의 숙면을 도와주는 수면 산업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꼴찌는 일본이라는 데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조사 대상을 직장인으로 좁히면 한국이 최하위 입니다. 우리 직장인이 만성 수면 부족 상태라고 합니다.

 

잠이 보약입니다. 몸과 마음의 힐링은 숙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동안 잠자는데 인색하던 사고를 버리고 숙면을 위한 생활 습관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동물들의 꿀잠

Posted by neoi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