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면 고요가 오듯이




얼마전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언빌리버블 스토리가 방영됨으로써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희대의 살인사건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순경 총기난사사건'이었습니다.

1. 사고내용

청와대 경호대 소속의 순경이 좌천 되어 시골로 발령받는 데 그곳에서 시골 순경들과의 불화와 텃세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동거녀와의 사소한 다툼이 발단이 되어 술을 마시게 되고, 결국 술에 취해 평정심과 자제심을 잃은 후 경찰서 무기고를 텁니다. 그리고는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도 인질과 함께 자폭합니다.

2. 사건 경위

1982426, 경남 의령군 궁유면 궁유지서에서 근무하는 순경 우범곤은 그날 저녁시간 근무를 위해 낮 12시경 집에 들어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동거녀가 몸에 붙은 파리를 잡아주기 위해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자 이를 계기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오후 4시경 지서로 간 후 저녁 7시 반경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만취한 그는 주먹으로 코피가 날 정도로 동거녀를 폭행했고 같은 집에서 살고 있던 동거녀의 친척언니가 뛰어와 말리자 친척언니의 뺨마저 때리며 닥치는대로 두들겨 부수는 등 난폭하게 굴었습니다. 이때 동네사람들이 몰려들어 동거녀를 두둔하자 우범곤은 다시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서로 향한 우범곤은 예비군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던 카빈 소총 2, 실탄 180, 수류탄 7개 등을 탈취했습니다. 2140분경 지서를 나온 우범곤은 마침 앞을 지나던 20대 남자에게 총을 쏜 후, 궁유면 토곡리 시장으로 달려가 총을 난사하여 장을 보러온 마을주민 3명을 살해했습니다.

2145분경 마을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궁유 우체국으로 가서 교환원과 숙직 중이던 집배원을 살해, 22시경에는 압곡리 매실부락으로 가서 10여 분간 총기를 마구 난사, 주민 6명을 살해, 2210분경에 운계리 시장으로 달려가 주민 7명을 살해, 2250분경에 상갓집에 난입하여 비상이 걸렸다고 말하고 문상객들과 어울려 10여 분간 술을 마신 뒤 갑자기 총을 난사하여 12명을 순식간에 살해하고, 불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난사하여 이곳에서만 무려 23명을 살해했습니다.

다음날인 27일 새벽 535분경 평촌리 마을의 한 민가에 다시 나타나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갖고 있던 수류탄 2발을 한꺼번에 터뜨려 그 자리에서 우범곤을 포함해 4명이 폭사했습니다.

사건이 나고 40분 뒤에 신고를 받은 경찰은 2622시 이후부터 우범곤을 뒤쫓았으며 마을주민들을 대피하도록 하는 한편, 범인 우범곤은 발견 즉시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범행을 저지시키지도 못 했고 인질을 데리고 자폭할 때까지 속수무책 상태이었다고 합니다.

3. 피해내용

이 사건으로 주민 62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도 33명이 나왔습니다. 조상대대로 친척 일가가 모여 사는 산골마을의 특성을 지닌 궁유면 일대 4개 마을을 거의 쓸다시피 살인을 저지르다보니 상당수의 집안이 줄초상이 났으며 일가족이 사망하거나 혼자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참변을 당하였습니다.

우체국에서 숙직하다 참변을 당한 집배원의 경우에는 부인마저 집에서 우범곤에게 살해당하는 바람에 이 집의 세 남매는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되는 비극이 생겼으며, 가장 처음으로 살해당한 청년과 우체국에서 살해당한 교환원 아가씨는 미혼으로 사망한 것을 비통하게 여겨 유족들끼리 합의하에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등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습니다.

4. 사고 결과

이 사건 진압이 미흡했단 이유로 정부에 대한 내각 사퇴 압력이 있었고 이로 인해 내무부 장관이었던 서정화가 자진 사임하였습니다. 그 후임으로 노태우가 내무부 장관을 맡으며 정치계로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근무지 이탈했던 의령서장등 3명의 경찰관과 방위병 3병이 구속되었는데. 이후 당시 의령경찰서장은 직무유기죄로 기소되었으나 법원은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나는 행위가 없다고 보고 무죄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일화로는 당시 수사본부는 범인 우범곤의 수법이 너무 잔인하였으므로 그의 뇌조직을 검사하기 위해 국립 과학 수사연구소에 시신을 보내 뇌세포검사를 하려했으나 검사가 불가능해 이를 포기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5. 우범곤의 이력

사고 당시 27세 이었던 순경 우범곤(1955115일 생)은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한 경찰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은 별 다른 말썽없이 평범하게 보냈습니다. 경찰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장차 경찰관이 될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고교 3학년때 아버지가 진급을 앞두고 대장암으로 병사하면서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해병대 출신에 태권도와 합기도 유단자로 육체적 능력이 아주 우수했던 우범곤은 경찰관이 되어 초임지인 부산 남부경찰서 감만2 파출소에서 근무하였고, 그후 서울 청와대에서 근무하기도하였으나 인사과정에서 근무 부적격자의 판단을 받아 의령경찰서 궁유지서로 좌천되었습니다. 그는 평소 유순하다가도 술만 마시만 성격이 난폭해지는 등 술버릇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궁유 지서로 전근온 뒤 2월부터 하숙을 하던 우범곤은 이웃집에 살던 전말순과 사귀게 되었고 3월초부터 전양의 집에서 동거생활을 하게됩니다. 동거에 들어가기 전에 전양의 부모는 결혼한뒤 함께 살라며 만류했지만 우범곤이 결혼비용이 없다며 가을에 식을 올리기로 약속하였답니다. 가난의 열등의식에 젖어있던 우범곤은 식도 올리기전에 여자집에 얹혀 살게되면서 자신의 무능함에 심각한 컴플렉스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6. 사건이 남겨준 교훈

지구상에서 텃세는 항상 존재한다

지구상의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다 텃세를 하지만 그중 인간만큼 텃세가 심한 생명이 있지 않다고 합니다. 사회생활 하면서 안당해본 사람 없을 듯 합니다. 능률도 떨어지고, 자신감 결여되고. 의욕 상실로 이어지지요. 직장 등의 조직 현장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텃새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이직 회사에서 나름의 텃세를 극복하는 방법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1위는 인사 잘하기입니다. 2위는 말 걸기 등 먼저 다가가기, 3위는 업무에 매진하여 업무성과로 인정받기, 4술자리에 빠짐없이 참석하기, 5위는 상사와 먼저 친해지기’, 6위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기등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는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자

사소한 것에 너무 목숨 걸지 않고, 사소한 것은 글자 그대로 그저 사소한 것일 뿐이다 라는 생각을 몸에 익히게 되면 우리의 삶에서 보다 관대하고 부드러워질 수 있는 에너지를 훨씬 많이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사소한 것에 묵숨 걸지 않는다`고 하여 우리의 인생이 완벽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 앞에 놓인 일들을 보다 덜 저항하는 자세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발휘하게 되면 보다 평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가 사소한 일에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 줄 것입니다.

총기관리를 철저히 하자

미국에서나 벌어지는 줄 알았던 총기 사고가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즉 모든 총기류 장비에 RFID Tag을 부착 사용하여 장비 관리를 Data base화하고, 또한 총기 무기고에 적용해 반입 및 반출 업무를 자동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총기관리에 RFID 기술을 적응함으로써 총기 사고 시 원 주인의 신분 확인이나 불법 유통 확인 작업에 즉각 대응할 수도 있으며 총기의 불법 유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방범용 CCTV가 강력범죄 예방과 범죄 해결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으므로 이 CCTV를 무기고에 설치하고 상황실이나 CCTV통합관제센터와 연결해 24시간 감시체제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되었으면 합니다.

 

 

Posted by neoi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