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면 고요가 오듯이


관람후기

7월 말경 부산문화회관에 들렸을 때 부산시립극단의 제38회 정기공연 조선형사 홍윤식을 소극장에서 공연한다는 현수막을 보았지만 곧 잊어 버렸다, 그러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려 밤잠을 설쳐야만 했었던 어느 날 저녁에 금정문화회관에 들렀다가 대극장에서 시립극단 특별공연 "조선형사 홍윤식"을 공연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큰 기대와 함께 관람하게 되었다. 오늘도 역시 대극장의 맨 뒤에 자리를 잡았다.

수사반 마리아의 나레이션부터 시작되었는데 마리아의 낭랑한 목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대극장에서 하는 만큼 호외를 외치는 소년이 관중석 앞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등 등장인물들이 무대를 넓게 사용하는 것 같아 좋았다. 소재 및 아이디어도 기발하지만, 배우들의 포스도 좋은 작품이라 생각된다. 수사극이라는 무거운 소재일 것이라는 본인의 예상과는 달리 극중인물 대부분이 개그를 하는 바람에 중간 중간 관객들의 작고 큰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일본인 역으로 나오는 이노우에 주임과 노마 형사의 개그는 정말 뛰어났다.

극 중에서 배우들이 '도깨비''도까비'라고 발음하여 혼란이 일어났지만, 연출가 성기웅 씨가 "대사에 당시 서울과 경기지방 사투리를 많이 활용했다."라고 한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전반적으로 대화에 운치가 있었고 정감이 있어 좋았다. 특히 빨래하는 동네 아낙, 어린 학생들, 도깨비 등으로 출연한 배우분의 코믹연기와 일본인으로 출연한 주임이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연기 등을 통하여 당시 일상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으며, 특히 도깨비와 씨름장면은 옛날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 들려주던 이런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어떤 장정이 저녁에 술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동네 어귀에서 키가 장대 같은 사람이 씨름 승부를 걸어와서 밤새도록 씨름을 하게 되고, 아침에 깨어보니 빗자루를 붙잡고 밤새 씨름을 하였다는 ...

제목이 '조선형사 홍윤식' 인데도 불구하고 뛰어난 조연들 덕분에 주인공이 제목에 이름이 걸릴 정도의 두드러진 캐릭터가 아니었던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지만 극의 끝마무리에 여지를 남겨 관객들 나름의 결론과 해석을 부여하였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출연진이 모두 부산시립극단 단원이라 그런지 다들 연기력이 뛰어났으며, 주연 조연을 구분 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기량으로 연기를 한 모든 배우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특히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소재, 한국만이 이런 연극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이 연극에 높은 평점을 주고 싶다.

출연진

출연 부산시립극단 전 단원

극본 성기웅/ 연출 성기웅/ 무대 부새롬/ 의상 황성원/ 조명 김철현/ 음악 전현미

분장 이지원/ 조연출 이선주

무대감독 정순지/ 기획 김향숙/ 홍보 김미화/ 일러스트 장준규


희곡 창작

이 희곡의 주요한 소재인 죽첨정 영아머리 유기사건은 19335월 경성 죽첨정(지금의 서울 충정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전봉관의 책 [경성기담](살림, 2006)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부분과 잡지 [신동아] 19337월호의 기사 단두유아사건의 전모및 당시 조선일보 및 동아일보, 조선중앙일보에 보도된 기사들을 참고하고 거기에 픽션을 더하여 창작됐다고 한다.

줄거리

소화 8(1933) 516일 아침, 경성 죽첨정(서울 충정로)의 금화장 고갯길에서 잘려진 아기의 머리통이 발견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나자, 평소 안정된 치안을 자랑해오던 일본 경찰은 근대적이고도 과학적인 수사를 표방하며 즉각 적극적인 수사에 나선다. 그리고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법의학분실은 사체 발견 시로부터 10시간 이내에 살아있는 남자아이가 살해된 것이며, 그 머리 속의 뇌수가 날카로운 도구로 파여져 있다는 감정 결과를 발표한다. 서대문 경찰서 수사1반에는 마침 내지(일본)으로부터 조선인 형사 홍윤식이 새로 부임해오고, 이노우에 수사반장은 뛰어난 일본어 실력과 명석한 두뇌를 갖춘 홍윤식을 반긴다. 간질이나 등창에 걸린 병자에게 어린 아기의 골을 먹이면 좋다는 속설로 인해 벌어진 사건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수사는 난항에 난항을 거듭한다. 경찰은 하층민들을 상대로 마구잡이식 수사를 벌이지만, 경성의 끄트머리인 서대문밖 일대에는 행정적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 하층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드러날 뿐이다. 또 끌려온 조선인 용의자들과 일본인 경찰 사이에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기에 혼란이 극에 달한다. 그런 가운데 홍윤식은 현미경을 동원한 주도면밀한 수사 끝에 사체가 담겨있던 봉투의 출처를 알아내고 홀로 외로운 수사를 이어간다. 한편 또 다른 형사 임정구는 머리가 좀 모자라거나 혹은 좀 이상한 용의자 뻐꾸기를 범인이라 및고 그를 닦달한다. 그러나 뻐꾸기가 아기 몸뚱아리를 묻었다며 알려주는 곳에서는 엉뚱한 물건들이 나올 뿐이다. 사건 발생 아흐레째. 미궁 속에 빠져버린 경찰의 수사를 질책하는 여론이 높아져가는 가운데, 이노우에 반장은 홍윤식과 임정구에게 미덥지 못한 실마리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 확인할 것을 지시한다. 그에 따라 다음날 홍윤식의 일행과 임정구의 일행은 근처의 염리 공동묘지로 각기 떠나는데......이번 사건을 잘 해결함으로써 내지로 전근해 가기를 소망하는 수사반장 이노우에, 조선에 온 지 어언 10년이 되어가는 형사 같이 않은 형사 노마, 아버지가 일본인인 혼혈이지만 조선인 어머니 밑에서 조선인으로 자라나야했던 임정구, 몇년만에 돌아온 고향 조선의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홍윤식...... 이렇게 네 명의 수사반원이 맞닥뜨리는 예사롭지 않은 사건들이, 수사반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그들을 지켜보는 소녀 마리아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과연 아기의 목을 베고 골을 빼내간 범인은 누구인가? 누가 이 사건을 해결하게 될 것인가? 아기의 나머지 몸뚱아리는 어디에 있는가?


Posted by neoi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