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면 고요가 오듯이

 

살면서 욕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욕은 자신의 불쾌하거나 좋지 못한 감정을 순간적으로 밖으로 드러내는 말인데, 남을 저주하거나 미워할 때, 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나무랄 때 사용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욕은 그 종류가 다양하고 범위도 넓습니다.

 

우리는 남이 저지르는 실책에 대해 쉽게 흉보고 욕하는 사람을 자주 목격합니다. '욕하면서 배운다.' 또는 욕하면서 닮는다.’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은 것을 보더라고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과 실패를 거울삼아 이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속담에는 며느리 늙어 시어미 된다.’ ‘며느리 자라 시어미 되니 시어미티를 더 잘한다.’ ‘며느리는 미운 시어머니 욕하면서 닮아간다.’ 등 며느리에 관한 속담이 많습니다.

 

욕하며 미운 마음이 지속해서 반복되는 환경에 놓이면 아무래도 그런 환경에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무의식에서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면서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납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공동묘지 근처에서 시장 주변으로, 다시 글방 옆으로 세 번 이사했다는 데서 비롯된 이 말은 사람이 성장하는 데 있어 환경의 중요함을 알려줍니다.

 

욕하며 배우고 닮아가는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째, 88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시 미국선수단이 입장할 때 “Hi Mom, I’m Here”라고 쓴 종이를 관중석 쪽으로 들어 보이며 입장하고, 잡담을 나누거나 선수단 대열을 벗어나 동료의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을 보고 당시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90년 북경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입장한 한국선수단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선수단의 볼썽사나운 짓을 그대로 답습하여 스탠드의 관중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것입니다.

 

둘째, 서로 이념적으로는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은 트럼프와 시진핑에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트럼프의 캐치프레이즈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와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은 공통으로 미국은 중산층의 상실감을, 중국은 중국인의 역사 감정을 자양분으로 삼아 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국가적 비전에서 트럼프와 시진핑도 서로 욕하면서 닮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셋째, 1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열매'는 지금까지도 죽 이어져 TV 방송을 통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방송인 등의 가슴에 이 배지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의 열매가 처음 등장한 건 55여 년 전 영부인의 왼쪽 가슴에 사랑의 열매를 달고 있는 사진이 등장하면서 알려졌다고 합니다. '사랑의 열매'는 금액에 상관없이 성금만 내면 지급된다고 하는데 보급량이 많지 않아 한 때에는 그것이 신분을 상징하는 배지로 변질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배지는 신분 따위를 나타내거나 어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옷 등에 붙이는 물건을 말하는데 작년 7월경 어느 여당 의원의 양복 상의에 주렁주렁 여러 개의 배지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군인 제복에 달린 화려한 약장과 훈장이 연상되었습니다.

 

최근 어느 친여당 정치인이 여당의 유력 인사를 비난하면서 나왔던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간다면서 전두환 대통령의 최측근 장세동처럼 문 대통령과의 의리를 지키겠다고 한 말입니다. 군부 통치 종식을 요구하며 목 터지게 부르짖으며 투쟁했던 그들이 정권을 쥐고 있는 지금에 와서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군부 정권의 핵심 세력에 빗대어 언급한 걸 보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은연중에 욕하면서 닳아가는 것이 아닌지.

 

끝으로 꼰대라는 말은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직장인 1,9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5.4%'우리 회사에 젊은 꼰대가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젊은 꼰대'란 상사에게 격의 없이 대화하는 세대로 대표할 수 있는 이른바 'MZ 세대' 90년대생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상사를 욕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꼰대처럼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 이유를 들어보면 '꼰대 문화아래서 자연스럽게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욕하면서 닮는다는 것이 어디 이것 뿐이겠습니까. 정치판을 비롯한 군대, 직장 등 조직 내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나쁜 건 섬뜩할 정도로 더 빨리 닮는다고 하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보편화된 진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행위가 반복되면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의 필수 요소 중 신뢰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뢰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얻기 위해 꾸준히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는데, 믿음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환경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혁신이 생존 전략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혁신이라 하면 대개 거창하고 큰 것이나 급진적 혁신만을 혁신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변화와 혁신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허위가 만연하는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적인 행동이다"(In a time of universal deceit telling the truth is a revolutionary act.)라고 말한 영국의 작가이자 언론인인 조지 오웰의 명언을 되새겨 봅니다.

 

 

Posted by neoi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