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면 고요가 오듯이



124 낮에는 높은 하늘에서 내려온 햇볕 덕분에 따스함을 느꼈습니다만 오후에 접어들면서 다시 우중충한 날씨로 돌변하더니 차가운 한기가 온몸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날씨보다 더욱 몸을 움츠리게 한 TV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방송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으며, 옛날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독일의 유명한 시인 안톤 슈낙(Anton Schinack, 1892197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을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123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 어느 시골 마을의 추악한 비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라도 어느 시골에서 마을사람들(할아버지들)이 고등학생인 지적장애 소녀에게 지울수없는 큰 상처를 주었던 끔찍한 사건을 통해 농촌 마을의 폐쇄적인 환경과 수 십년 알고 지낸 사람들의 담합으로 어떻게 한 여성의 삶을 짓밟고 수 년 간이나 사건을 은폐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본능에만 충실한 삶을 산다면 인간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인간이 짐승보다 결코 나은 것이 우월한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인간은 탐욕(욕망)으로 가득차 있지만, 짐승은 단지 생존욕망만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욕구충족 이상의 것을 탐하지만, 짐승은 욕구가 총족되면 만족한다고 합니다. 즉 인간은 배를 채우고도 남는 것을 저축해 놓지만,, 짐슴은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먹이를 탐하지 않는 것이 대체적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장난으로 살생을 하기도 하지만, 짐승은 진정성을 가지고 죽인다고 합니다. 인간은 타인은 물론 심지어 자기살인까지 하지만 짐승은 자살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웃으면서 아무런 생각없이 가볍게 살생하기도 하지만, 짐승은 약자를 죽이면서 웃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먹이 놓고 싸울 때, 비겁하고 비열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짐승은 정정당당하게 싸운다고 합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Anton Schnack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 쪽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의 양광이 떨어질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하게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은 끊어져 거의 일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옛 궁성, 그래서, 벽은 헐어서 흙이 떨어지고, 어느 문설주의 삭은 나무 위에 거의 판독하기 어려운 문자를 볼 때, 몇 해고 몇 해고 지난 후,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가 발견될 때, 그곳에 씌었으되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그런 행동이 내게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가져오게 했는지...' 대체 내 그러한 행동 이란 무엇이었던가? 어떤 거짓말? 아니면 또 다른 내 어리석은 처신? 이제는 벌써 그 많은 잘못들을 기억 속에서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때문에 애를 태우신 것이다

동물원에 잡힌 범의 불안, 초조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철책가를 그는 언제 보아도 왔다갔다 한다. 그의 빛나는 눈, 그의 무서운 분노, 그의 괴로운 울부짖음, 그의 앞발의 한없는 절망, 그의 미친듯한 순환- 이것이 우리를 말할 수 없이 슬프게 한다

휠 데를린의 싯귀. 아이헨도르프의 가곡. 옛 친구를 만날 때, 학창 시절 친구의 집을 찾아 방문하였을 때, 그러나- 그가 이제는 우러러 볼만한, 한 사람의 고관대작, 혹은 돈이 많은 공장주로서의 지위를 가져 우리가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 시인 밖에 못 되었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손을 주기는 하나 달갑지 않은 태도로 우리를 대한다고 벌써 느껴질 때, 포수의 총부리 앞에 죽어가는 사슴의 눈망울, 재스민의 향기, 항상 이것들은 나에게 창 앞에 늙은 나무 한 그루가 있는 내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공원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음악, 그것은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 밤에 모래 자갈을 고요히 밟고 지나가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처럼 들리고... 노래의 한 소절 같은 쾌활한 웃음소리가 귀를 간질이는데... 그러나, 당신은 벌써 근 열흘이나 침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을 때, 달아나는 기차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것은 황혼의 밤이 되려 할 즈음, 불을 밝힌 창들이 유령의 무리같이 시끄럽게 지나간다 창가 에서 은은히 웃고 있는 어떤 여성의 아리따운 얼굴을 볼 때, 현란하고도 번화한 가면 무도회에서 돌아왔을 때, 대의원 아무게 씨의 강연집을 읽을 때,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가늘고 소리없는 비를 희롱할 때, 공동 묘지를 지나갈 때, 거기서 문득 '여기 열 다섯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는 누워 있음' 이라 쓴 묘비를 읽을 때, , 그 소녀는 어렸을 적 단짝 동무 중의 한 사람... 날이면 날마다 언제나 번잡한 도시의 집과 그 집에 있는 나무 밑동만 보고 사는 시꺼먼 냇물을 볼 때, 첫 길인 어느 촌여관에서의 외로운 하룻밤, 시냇물의 졸졸거리는 소리, 곁방 문이 열리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며, 낡아 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하게 칠 때, 그 때 당신은 난데없는 애수를 느낄 것이다.

날아가는 한 마리의 철새, 추수 후의 텅 빈 밭과 밭들 어릴 때 살았던 적이 있는 조그만 지방에 긴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들렀을 때, 이제는 아무도 당신을 알지 못하고 그 때 놀던 자리에는 붉고 거만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으며, 당신이 살던 집에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는데 황제처럼 멋지던 아카시아 나무와 우거진 풀은 베어졌는지찾을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뿐이랴? 오뉴월의 장의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보라색, 검정색, 회색 같은 빛깔들. 둔한 종 소리. 바이올린 G현의 소리, 추수 후, 가을 밭에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진 비둘기의 깃털, 자동차에 앉은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떠돌아다니는 가극단의 여배우들, 벌써 줄에서 세 번째 떨어진 광대,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처녀의 가는 손가락이, 때 묻은 서류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보름밤에 개 짖는 소리, 크누트 함순의 이삼절, 어린아이의 배고픈 모양, 철창 안에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무 위에 떨어지는 흰 눈송이... 이 모든 것이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Posted by neoi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