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면 고요가 오듯이


우리나라가 IMF 사태로 국기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였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공기관의 대규모 인력 감축이 시행되었는데 이때 집배원, 우체국 창구직원 등 5700여 명이 감축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 인원은 감축되었지만, 우편물과 소포 등은 급격하게 증가하여 집배원의 장시간 노동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최근 3년간 우체국 집배원 2,200여 명을 공무원으로 전환하였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특히 이들 집배원은 공무원시험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약직으로 근무하다 정규직 공무원으로 전환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한쪽에서는 우정 9급 계리직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과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욱이 우체국이 내년에 정규직 집배원의 인원을 2천 명으로 증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해당 공무원 수가 크게 늘어난다고 하니 그동안 격무에 시달리던 집배원에 대한 처우개선의 하나로서 바람직한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 대기업의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에 이루어진 협정에 따라 관례적으로 노조 조합원 자녀를 우선채용 하는 이른바 '고용 세습'이 이슈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이 집배원 공무원 채용 과정에 스며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계약직에서 국가공무원으로 전환에 따른 비용은 국민들에게 부담이 돌아가기 때문에 대국민 우편 서비스에도 질적인 향상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그동안 업무량 과다를 이유로 우편서비스에 흠은 없었는지도 살펴보고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옛 시절 교통 통신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당시 집배원은 입대한 아들과 멀리 시집간 딸등 자녀들의 안부 편지라든지, 합격통지문, 연애 편지, 그리고 각종 경조사 등을 가지고 좁은 골목길이나 험한 산길을 누비며 기쁨, 슬픔 그리고 사랑을 전하는 메신저였습니다. 그래서 '편지요' 하며 외치는 집배원은 서민들의 마음을 움켜쥐는 반가운 손님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집배원들에게서 그런 분위기를 기대하기란 어렵게 되었습니다. 나의 경우 아파트 저층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어느 날 집배원이 등기우편물을 배달할 때마다 출입문을 열릴 때까지 수취인인 내 이름을 반복하여 외치고 있었습니다. 빨리 나오라는 의미인 것으로 생각하고 우편물 배달안내문자가 도착되면 대기하다가 가능한 한 재빨리 문을 열고 우편물을 접수하였습니다. 초인종이 울리면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재빨리 문을 열고 맞이하는 데도 이 집배원은 반복적으로 수취인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초인종 울린 후 우편물 받을 때까지의 소요 시간을 재어보니 12여 초 경과되더라고요. 소요 시간을 집배원에게 알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요즘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일반 택배사에서는 운송장에 수취인의 이름을 다 표시하지 않고 일부를 별표처리 하는 사례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집배원이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수취인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크게 호명하는 행위는 개인정보유출과 사생활 보호 취지에 위배될 수 있으니 자제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이 집배원이 내 말이 끝나자마자 불쑥 어떤 서식에 내밀며 서명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뭐냐고 물어보니 집배원 격무 해소해 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라고 하더군요. 나는 흔쾌히 명단에 사인해 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집배원은 문 앞에서 내이름을 큰소리로 호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택배 알림 카톡을 받았습니다. 택배는 메시지에서 예고한 대로 예정시간내 도착했는데 또 그 집배원이 왔더군요. 택배물을 받아 들고 출입문을 닫으려는 순간, 본인이냐고 묻는 것이 통례인데, 그렇지 않고 이름을 대라고 하였습니다. 순간 이건 아니다 싶은 불편한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이름을 말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일반 택배사를 자주 이용하고 있지만, 수취인에게 이렇게 이름을 대라고 하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나는 이런 행위에서 불편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체국 집배원에게는 대국민 서비스 개선과 정보화를 위해 PDA 단말기가 배포되어 있어 수취인의 서명만 하면 마무리가 되는 데도 불구하고 그걸 이용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마련한 단말기를 현장에서 왜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현장에서 사용하지 않는 기기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예산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정사업본부가 블록체인 도입, 전기차 구입, 드론 우편물 배송 제도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제도들이 미래지향적이며 좋은 제도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라나, 시행후 흐지부지 되어 현장에서 외면당하지 않도록 그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각계각층의 전문가는 물론 일반 국민들의 의견도 수렴하여 현장에서 잘 활용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검토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제도 도입에 앞서 현행 사업 중 택배 사업을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민영화하는 것이 수익적 측면이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화하는데 실상 현장 직원들의 마음가짐은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질 좋은 우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제도의 도입과 함께 제대로 된 직원교육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neoi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