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면 고요가 오듯이

지난 1013일 자녀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어, 앞으로 국회 심의를 거쳐 내년 121일부터 시행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환영하는 분위기인 가운데 체벌하지 않고 아이를 키울 방법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민법에서 60여 년간 유지돼 온 '징계권' 조항을 이제 삭제하는 것이 어찌 보면 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민법 개정안 마련에 대한 타이밍은 적절한 것 같습니다.

 

지난 6월을 뒤돌아보면 천안 계모 9세 아동 가방 감금 사망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창녕 9세 아동 학대 사건으로 이어져 우리 모두를 당혹스럽게 했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부모의 자녀 체벌을 금지하고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대책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꽤 높아진 시기였다고 짐작합니다..

 

나는 자녀 징계권이 민법에 명시되어 있다는 사실은 막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 조문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자녀 징계권에 관한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민법 제915(징계권)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조문을 찾는 과정을 통하여 느낀 점은 민법이 우리나라 모든 법 중에서 조문수가 가장 많은 1,118조로 이루어져 분량이 방대하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법임을 실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민법에 자녀 징계권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 한 체 자녀를 보살피고 키우는 데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극히 일부에서 이 조문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녀 징계란 의미를 풀어보면, “자녀의 부정·부당한 행위에 대하여 잘못을 뉘우치도록 그 행위의 그릇된 점을 지적하며 제재를 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부정·부당한 행위란 개념과 범위 등이 참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거기에다 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일부의 학대 혐의를 받는 부모가 이런 점을 이용하여 학대 피해자를 훈계할 의도였다는 점을 주장하여 감형받은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감화 기관이나 교정 기관에 위탁에 관한 것으로 이 조문 내용은 이런 사례가 굉장히 드물어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내용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느 부모가 자녀가 문제가 있다고 하여 소년원이나 소년 보호시설에 맡기려고 하겠습니까.

 

인생은 갈등의 연속이라 합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 방법 중 대화를 통하여 해소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녀에게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를 통하여 빠르게 시정하고자 하는 문제 해결 방법이 체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체벌로 일시적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듯하지만 자녀에게 정서 불안이나 폭력성이 짙어지게 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것입니다.

 

어느 학교에서 자녀 체벌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체벌을 경험한 청소년양육에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볼 때,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아동 청소년기에 겪었던 가정에서 보고 배우는 폭력적인 일상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 결과들을 통하여 나타나기도 합니다.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아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녀를 양육할 때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40%에 근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1999년 자녀 체벌 금지를 가장 먼저 법제화한 스웨덴의 경우 10%를 밑돌고 있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어떤지 잘 말해주고 있다고 보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폭력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체벌 금지에 관한 법령을 만들고 처벌 규정을 두는 등 제도·정책적 차원의 해법과 더불어 문화적 차원의 해법이 장기 지속적으로 추구될 때 서서히 폭력 문화와 관련된 의식과 태도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유행했다는 말 중에 임금, 스승, 아버지에게 충성하고 공경해야 한다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한자어가 있습니다. 전통적 가부장적 권위 의식을 상징하는 이 말을 최근 영화, 방송가에서 글자를 바꾸어 두사부일체, 집사부일체 등 용어로 즐겨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회화가 시작되므로 부모는 자녀와의 사이에 일어나는 사소하게 보이는 일이 자녀 미래를 결정하는 주춧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국가는 사회와 국민의 삶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정치 및 사회 지도층에서부터 솔선수범하여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언행일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점점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투명한 미래 사회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 후대에 좋은 유산을 많이 못 물려줄지라도 최소한 폭력 인자를 물려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영화 The Butcher Boy 에서)

Posted by neoi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