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면 고요가 오듯이


우리는 과학기술과 교통 통신의 발전으로 세상이 한마을처럼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그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고유 명절은 점차 잊혀지고 데이 문화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설, 추석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가족 간 갈등으로 명절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명절 폐지 청원까지 올라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대에 와서 점차 명절의 의미가 퇴색하였고 설날, 추석 등 몇몇 명절만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 5대 명절 중 하나인 정월 대보름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정월대보름이란 명절은 그 명맥을 잘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설과 추석 명절은 가족 단위로 치러지는 행사라 참여하는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월대보름은 자치단체의 행사로 시행되는 공동체적 성격을 띠어 개인 간의 갈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며, 현재까지 전국 곳곳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며 시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불구경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의 보름달의 이미지는 좋은 조짐과 상서로운 기운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름달을 보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풍요로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반면에 서양인들은 보름달이 나타나는 날에는 괜히 불안해하며, 보름달을 두려움의 존재로 여기는 같네요. 즉 서양에서의 보름달은 악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세의 서양에서는 보름달이 뜨기만 하면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난폭해지고, 날카로워지면서 성욕이나 식욕이 증가한다고 믿었습니다.

 

정월대보름 행사의 메인이벤트인 달집태우기는 달이 떠오른다는 시각에 맞추어 불을 지릅니다. 부산의 달 뜨는 시각이 오후 541분이라 하니 이를 기준으로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빨갛게 불꽃이 피어오르면 따닥따닥 달집이 타면서 나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어서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오룹니다. 동시에 이 광경을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이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듭니다. 열기를 뿜는 달집이 타면서 나오는 불꽃과 주위 구경꾼들의 휴대폰 불빛의 무리가 어우러져 또 하나의 장관을 어김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처럼 행사 당일 아침부터 비가 와 행사 관계자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상당히 조바심이 났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지만 오후에 들면서 비가 그쳐 다행스럽습니다. 행사가 진행되지 못하였다면 행사를 준비한 이들이 제일 속상해하겠지만 쏟아지는 빗줄기가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바로 재난예방 관계 공무원들인데 그들은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비상근무를 하면서 달집이 타면서 날리는 불똥에 노심초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달집의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면서 어느 학자의 불에 대한 정신분석에 관한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그에 의하면 태초의 세상은 '의 세상이었다가 갑자기 숲속의 나무들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숨어있던 불은 나뭇조각을 마찰하면 깨어나듯이 불은 마찰에 의해 일어나는 힘이며 욕망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동안 욕망이 사라지지 않을뿐더러 그 강도가 강할수록 불에 대한 느낌 또한 강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최근 입사시험이나 SSAT 시험의 인적성 검사 시 등장하는 설문 중 나는 불을 보면 매료된다"라는 문제를 두고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불에 매혹되고 이끌린다는 것이 내재된 욕망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고 풀이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 것이 유리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처럼 심리학적, 철학적 의미에 접근하는 문항에 대한 답변은 한 가지 유형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답변은 솔직하고 최대한 일관성 있게 풀어나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에 매료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나의 경우, 아주 오래전 군 복무 시절, 강원도 대성산에서 혹한기 훈련할 때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야간 훈련 시엔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밤에 불 지피는 행위를 절대 금지합니다. 그러나 영하 20도의 추운 날씨에 견디다 못해 몇몇 군 동료와 둘러앉아서 주위에 있는 나뭇잎 몇 장을 주워 불을 피웠습니다. 그때의 주황색을 띤 너울거리는 불의 모습, 따뜻한 온기 그리고 군 지휘관에게 행여 들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던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무튼 올해는 그동안 쌓였던 걱정, 근심, 스트레스 등 불행하고 불미스러운 일들을 모두 모아 달집의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던져버리고 우리의 마음에는 새로운 희망과 행복이 가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Posted by neoi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