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면 고요가 오듯이



SBS의 교양 프로그램중의 하나인 궁금한 이야기 Y’는 시청자들의 제보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취재 형식을 통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내용입니다. 지난 1118일 방영되었던 사연은 4개국어를 구사하는 제일동포 청각장애인 김수림씨를 소개 하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최근 출간된 책 귀가 안 들리는 내가 4개국어로 말할 수 있는 이유로 연일 화제를 몰고 있다고 합니다. 그 책에 담겨진 내용은 김수림씨의 부모가 이혼하면서 네 살 때 버려졌고, 여섯 살엔 청력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12세가 되면서부터 일본에서 술집을 하는 어머니와 살게 되었지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녀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친 모습이 그 책에 담겨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책은 출간 한 달 만에 3쇄를 찍을 정도로 일본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뿌리고 있다고 합니다.

성장배경과 주위 환경

두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네 살 때 아버지가 전라도에 있는 먼 친척집에 그녀가 맡겨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9개월 만에 나타난 어머니가 그녀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일본으로 갔다고 합니다. 6살이 되던 어느날 열이 나고 몹시 아팠지만 병원에 가질 못했는데 그 이후 청력을 상실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지바(千葉)현에서 술집을 하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지냈게 되었습니다. 가게 단골 집에서 4년 동안 더부살이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고 일본어도 배웠는데 성적은 바닥이었고,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게다가 뚱뚱하고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는 또래 아이들의 놀릿감이 되었고, 언제나 왕따이었다고 합니다.

김씨의 어머니는 그녀가 남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으며. 병원에서 청각장애인 등록을 권했지만 그것도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의 기대에 맞춘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큰 스트레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씨는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지 않으면 이런 생활이 평생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고선 불현듯 생각한 게 영어를 배우자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를 설득해 2년간 영국에 어학연수를 떠났다고 합니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생이었는데. 단어 하나하나씩 발음기호를 보고 발음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엔 내 발음을 제3자가 확인해주는 과정을 거쳐 단어 하나하나를 배웠다고 합니다.

2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김씨는 2년제 대학을 나와 오지제지에서 4년간 근무했지만 사귀던 남자친구와 이별하게 되고 그로인해 우울증으로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후 그녀는 10개월간의 은둔형 외톨이로 살던 끝에 재기를 다짐하기 위하여 4년간 모은 돈으로 3년여의 세계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한국어는 어려서, 일본어는 어머니가 있는 일본으로 와 살기 위해 익혔다고 합니다. 영어와 스페인어는 장애인인 그녀가 당당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 배웠다고 합니다.

언어능력의 비결

청각장애인, 김씨가 4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비결이란 다름아닌 20년전부터 쓰는 사전 속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전에 그려진 발음 입모양 그림을 보고 단어를 외웠다고 합니다. 김씨가 말을 할 수 있기까지는 "목의 진동을 느껴보려고 만져보기도 하고 입을 열어서 혀의 움직임도 보고, 언젠가는 이야기 할 수 있겠지 하면서 그렇게 1001000번 연습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피나는 연습과 노력 끝에 상대방의 입술모양을 읽는 구화법을 터득했고 그때부터 듣지 않고도 말을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입니다.

세상 앞에 당당해진 그녀는 잃어버린 자신감도 되찾고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영어와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입과 목에 손을 대어 단어를 익히는 방법을 통하여 단어별로 하나씩 하나씩 다 익혀야 하였으며, 단어 하나를 아는데 3일도, 1주일도 걸렸다고 합니다. 발음도 복잡하고 읽는 법도 다양해 힘들었지만 그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목을 직접 만져보기도 하고 입을 열어 혀의 움직임도 보고 잠들기 전까지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발음 교정을 했다고 합니다.

회사 생활과 어려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취업박람회 행사장에 도착하여 어느 한산한 부스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외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이 상담창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골드만삭스 인사담당 직원이었으며 김씨는 면접을 볼 때 귀가 안 들리는 데도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과 4개 국어 구사가 가능하며 최근 3년간 갔다온 세계여행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며칠 뒤 뜻밖에 합격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관리직에서 일했고 입사 3년차에 금융준법감시업무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4년 전 지금 직장인 일본의 한 국제금융회사로 옮겨 법무심의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회사생활에 어려움도 많았으며, 김씨의 책상엔 전화가 쓸모 없어 치워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회의에는 쫓아가지 못하여 그녀의 동료가 옆에서 메모를 해 도와준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장애인은 아무리 애써도 반드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런 현실에 좌절도 할 수 있지만, 결국엔 장애를 인정해야 자신도 사회도 편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도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들에게 보답한다고 합니다.

가족은 소중한 선물

김씨는 5년 전 인터넷 만남사이트에서 출판사에 근무하는 일본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이제 3살이 된 딸 아리스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장난 치기 일수인데, 소리가 안 들리는 청각장애인이다 보니 엄마 노릇 제대로 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계속 우는데도 전혀 알지 못해 그냥 놔두었을 때가 마음에 아팠다고 합니다. 그래서 딸 앞에만 서면, 장애의 벽이 크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 자는 방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수시로 카메라를 쳐다 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딸 아리스를 위하여 본인이 치는 피아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리듬을 모르지만 그리고 자신에겐 들리지도 않지만, 피아노를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을 만들기 위해 같은 곡을 수없이 부르고 또 불렀다는 그녀의 말에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큰 난관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던져준 교훈

신체적 장애가 없는 우리들은 조그만 불편함이나 어려움에 마주치게 되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나는 재수가 없을까. 노력해봐야 어쩔 수 없어'라고 하면서 그 원인을 본인 보다 외부환경에 돌리거나 너무 쉽게 자포자기하는건 아닌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볼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씨의 사연을 보면서 우리들에게 닥친 어려움이 때로는 스스로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며, 어렵고 힘든 상황도 이에 대처 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세상 모든 일은 사람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19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가 다음과 같이 한 말을 우리가 다시한번 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듈은 일이 잘못되면 항상 환경탓으로 돌린다. 나는 환경라는 것은 믿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환경은 찾는다. 만약 그러한 환경을 찾을 수 없다면 그런 환경을 만든다

끝으로, 가장 인상적인 말 중 하나는 진행자가 그녀에게 들을 수 있으면 무슨 소리가 듣고 싶냐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조금 머뭇거리더니 그녀는 들을수 있게 되어 다른 한가지를 잃어야 한다면 그냥 듣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한 말이었습니다. 나는 이 말에서 어느 종교도 가지지 않은 무신론자이지만 범사(일상적인 일)에 감사하라는 말이 정말 좋은 말 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Posted by neoi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