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예방법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학교폭력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2004년에 제정되었습니다. 이후 2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법의 제·개정이 29차례나 시행되었지만 학폭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학폭은 세계 각국에서 공통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더 글로리’가 글로벌 흥행에 성공하게 됨에 따라 학폭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학폭 논란이 있는 연예인, 고위공직자 등이 엄청난 질타를 받고 퇴출당하는 등 학폭에 대한 단죄가 사회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학폭은 대개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에서 많이 발생하며, 종종 고등학교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중학교가 학폭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이 시기에 또 가장 욕설을 많이 쓰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학교폭력의 진원지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학한 뒤 가출까지 한 청소년들이며, 이들이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어떤 조직이든 간에 갈등이란 언제나 있게 마련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청소년기에 학폭 빈도가 높고 피해가 큰 것은 사소한 갈등을 푸는 방법이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청소년기에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어 분노 폭발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살다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소모임, 단체생활 등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조금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 싸움, 기 싸움이 일어나 일시적으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 경력 등으로 서열이 자연스럽게 정해져 안정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렇지 않고 서열 기준이 모호하고 불분명할 때는 경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간혹 물리적 폭력도 사용되지만, 말과 눈빛 등 여러 분야의 능력을 동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10대들은 힘, 인기 또는 통제권을 갖기 위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경멸함으로써 자신의 우위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경향성이 더 높은 것 같습니다.
나는 까마득히 먼 옛날 국민(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때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중 하나는 우리 반 교실에서 남자 아이간에 싸움이 일어났었습니다. 당시 우리 반에는 육손이란 별명을 가진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별명은 손가락이 5개가 아니라 새끼손가락 옆에 작은 손가락이 하나 더 있어서 육손이라 불리었습니다. 육손이가 그 싸움에서 승자가 되어 서열정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당시 싸움의 승부는 먼저 코피 나거나 울면 지는 것이 룰이었지요.
또 하나는 당시 담임이 여선생님이었는데, 교실에서 첫 대면 시간대이었습니다. 칠판에다 커다랗게 선생님의 이름인 '○숙덕'이라 쓰면서 본인 소개 말씀을 하였습니다. 당시 쑥을 이용하여 만든 쑥떡을 자주 해 먹던 배고픈 시절인지라 숙덕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쑥떡이 연상되었습니다. 아이들 모두가 일제히 웃으며 “쑥떡. 쑥떡이라고, 쑥떡이야” 등 쑥떡 이야기로 소란이 멈추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 학폭을 줄여 나가기 위해서는 첫째, 가해자 개인의 내적인 요인, 즉, 공격성, 공감 능력 결핍, 또래 동조 문제 등에 있음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학폭을 통해 얻는 타인에 대한 통제권이나 우월감 등의 일시적 만족감보다 나중에 본인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이 엄청나게 커진다는 것. 그리고 단순한 장난이나 우발적 갈등으로 시작한 괴롭힘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해자가 모두 인식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학폭이 발생하면 사례를 상황극으로 재연하게 하고 가해자를 피해자 역을 맡게 하여 피해자가 겪었던 불안과 고통 등을 실감하게 하여 가해자의 잘못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해자가 문제가 있음을 인식했다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화해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상담과 심리치료 등 활동을 통하여 정신건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학폭에 대한 학부모 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대체로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학부모는 자녀 일을 본인 일로 동일시하기 경향이 있어 학부모 간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가정통신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형식적이고 딱딱한 문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사례 중심으로 하는 쉽고 간단한 내용의 동영상을 제작 및 배포하는 방안 등 다각적이고 세부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급격하게 변화하는 교직 환경과 함께 교사의 입지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권 침해보다 더 근원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교사 권위의 실종이라고 합니다. 교사의 권위가 실종된 상태에서는 학폭 예방 교육 및 올바른 조치를 할 수 없으므로 교사의 권위 회복이 더 시급한 것 같습니다. 특히, 학생이 교사를 평가하는 교원능력평가 등은 교사 권위를 무너뜨리는 구조적 요인 중의 하나이므로 이번 기회에 교육 당국의 과감한 조치로 폐지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학생 교육과 행정업무에 쫓기는 교사에게 이 문제를 전부 맡겨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으므로 교육청 차원에서 사소한 폭력일지라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다양한 예방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학폭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해자에게는 징벌 강화에 중점을 둔 고강도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학교생활기록부의 학교폭력 가해 기록 보존 기간을 연장하여, 학폭 가해자에게 대입은 물론, 취업에도 실질적인 불이익을 줌으로써 경각심을 높이겠다는 방안 등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학폭이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며 학폭의 원인은 개인의 내적인 문제, 가정 환경, 학교 교육제도의 한계, 사회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이므로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정부 등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헤쳐 나가야만 학폭의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