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세기 유럽 사회에서 피아노 등 악기는 귀족들의 소유물인 동시에 권위의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부를 축적한 중산계급 층에서 이것을 매우 부러워하였던지 자신들의 집에 과시용으로 피아노를 들여놓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피아노는 미국으로 전파되었으며, 대량 유통·판매되기 시작하여 대중화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피아노는 여자들의 전유물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격으로 피아노 치거나 배우는 것은 역시 남자답지 못하다는 분위기가 지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90년대의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우리나라도 피아노 레슨이 아이의 지적 발달과 예술적 감각 향상에 도움 된다고 하여 자녀에게 피아노 교육을 시키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유행처럼 너도나도 피아노를 집에 들여놓았습니다.
집에 피아노가 없어도 유일하게 피아노를 가까이 보면서 장난삼아 한 손가락으로 건반을 꾹꾹 눌러보던 시간은 중학교 음악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음악 수업은 눈을 감고 음악감상 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는데, Jean Gabriel-Marie의 금혼식(La Cinquantaine)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클래식을 즐겨하지 않지만, 당시엔 금혼식의 의미도 모른 채 좋아하였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어느날 세월이 지날수록 필요하지 않거나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이 늘어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피아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실의 많은 공간을 자리 잡고 있던 피아노의 경우 몇 년 정도 아들이 사용한 후 30년 이상 방치되었습니다.
피아노를 처분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오래된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대부분 물건마다 소중한 추억이나 의미, 비싸게 샀으니까. 언젠가 사용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등으로 버리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할 때 어려움이 발생할 뿐 아니라 몇 년 전 부모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상기시키면서, 사용하지 않거나 생활에 불편을 주는 물품은 미리 처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등의 이유를 들어 설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처분하기 위해 피아노 중고업체 여러 곳에 전화해 보았으나 폐업하였거나 휴업상태라 찾기 어려웠습니다. 어쩌다 연결된 업체에서는 요즘은 삼익과 영창피아노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중고 피아노를 넘기고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폐기하기 위해 수수료를 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 범천동에 있는 한 중고업체와 전화 연결이 되었습니다. 중고 피아노를 쉽게 처분하기 위해 아파트 저층에 있다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지금 바쁘다면서 다시 전화가 하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약 1시간 경과 후 걸려 온 전화에서 그는 피아노 연식은 묻지 않고 피아노 색깔과 주소지, 그리고 아파트 구조 등만 물어보더니 3만 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상외로 비용이 적다고 생각되어 흔쾌히 수락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11시까지 도착하기로 약속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11시가 다 되도록 오질 않더니 전화로 또 하루 늦추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9시경엔 내비에 주소지가 뜨질 않는다고 하면서 주소를 알려 달라는 전화도 왔었습니다. 11시쯤에 용달차를 타고 60대쯤으로 보이는 남녀 두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피아노 뚜껑을 열어보더니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음향판(?)이 망가졌다고 하면서 갑자기 “못 가지고 가겠다”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예상치 못한 그의 태도에 당황스러웠습니다. 그가 먼저 3만 원에 처리하겠다고 말해놓고 지금 와서 못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장기간 사용하지 않아 음향판이 망가졌다는 핑계로 가져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폐기 처분할 때도 음향판의 상태가 양호해야 한다는 말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짧은 침묵의 순간을 깨고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가지고 가셔야지요” 하면서 5만 원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가 6만 원을 요구하였지만 5만 원을 주고 처분하였습니다.
그의 사무실 번호가 051-○○○-4444이며, 핸드폰 번호 010-○○○○-1234의 끝 4자리 숫자 조합이 특별하듯이 한때는 피아노 사업이 번창하여 잘 나갔던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러나 최근 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이제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면서 돈을 더 받아내려고 Low-balling 하는 모습에 안쓰럽기도 하였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몇 년 전만 해도 중고 피아노를 30여만 원에 팔 수 있었던 것은 2010년대 이후 중국의 중산층 사이에서 피아노가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 판매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동안 중고 피아노를 수입해 왔던 중국 시장의 판로가 막혔다고 합니다.
그 결과 중고 피아노를 부숴서 목재와 철재를 분리한 뒤에 목재는 폐기하고, 피아노에서 나오는 100㎏가량의 철재는 고철로 판매해 재활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답니다.
한때 중산층 가정의 필수품이었던 피아노가 짐이 되어버린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저출산 현상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계청 인구 추계를 보면 학령인구(6~21세)가 1980년도와 비교하면 50.4%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피아노학원의 휴·폐업이 늘어나,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피아노 학원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층간소음으로 인해 집안에서 피아노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피아노가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 영향도 있습니다.
끝으로, 저출산 문제는 단순한 인구 감소 문제가 아닌, 사회, 경제, 문화, 개인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기업, 시민 사회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