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면 고요가 오듯이

 

 

우리 전통 명절 중에서 음력 보름날에 지내는, 잘 알려진 명절은 추석과 정월 대보름날입니다. 한국의 명절이 이처럼 달과 관련된 이유는 농경 문화와 음력 사용으로 인한 것입니다. 당시,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 음력이 시간 측정과 삶과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해를 덜 중요시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해는 매일 뜨고 지는 동안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달의 모양은 시기별로 변화합니다. 대략, 음력 1~3일 초승달, 음력 7~8일 상현달, 음력 15일 보름달이 되었다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여 음력 22~23일 하현달, 음력 29~30일 그믐달이 됩니다.

 

달의 모양이 바뀌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대는 17세기에 이르러야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서는 신의 의지에 따라 달이 변화한다고 믿었고, 일부에서는 변화하는 달의 모양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예언이나 징조로 간주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했다고 합니다

 

정말 달은 전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옛사람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수호신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달빛이 칠흑 같은 밤의 어둠을 밝혀줌에 따라 사람들이 수렵, 농사, 사냥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시 사람들이 달 모양 중에서도 제일 크고 밝은 보름달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어질 대로 깊어졌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날입니다,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여 보름달을 볼 수는 없었으나 공교롭게도 주말인 토요일과 겹쳐 마치 노는 날 명절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년과 달리 정월 대보름 축제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짐작해 보기도 했었습니다. 부산 이곳저곳에서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리지만, 교통이 원활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안전하게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 등이 잘 갖추어진 점을 고려하여 해운대 달집태우기 축제를 택했습니다.

 

정월 대보름의 다채로운 행사 중 하이라이트는 역시 달집태우기입니다. 달집을 태우는 전통은 부정과 사악한 것을 몰아내고 한 해의 행운과 복을 불러오도록 몸과 마음의 정화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드디어 보름달이 뜨는 오후 558분에 맞춰 장내 아나운서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습니다. 순간 기대감과 긴장감이 도는 가운데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달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행사 관계자들이 들고 있던 횃불로 달집에 불을 붙였습니다. 순간 많은 사람의 하는 함성이 울려 퍼지면서, 달집은 이내 빨갛게 불꽃이 피어오르고,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동시에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과 관광객이 일제히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행사장은 스마트폰 푸른빛의 무리와 어우러져 또 하나의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세 가지 구경거리 중의 하나인 불구경을 즐기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원시 시대부터 지금까지 불은 우리에게 필요한 중요한 생존 요소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불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때로는 위험하고 파괴적이기도 하여 불길이 번지면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이 불구경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달집의 거대한 불길을 바라보다가 문득 디스커버리 다큐 ‘Naked and Afraid’의 장면이 잠깐 떠올랐습니다. 두 명의 참가자가 벌거벗은 상태로 정글 등 극한 환경에서 오직 하나의 칼과 파이어 스틸만 가지고 21일 동안 생존하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머무를 곳을 정하면 먼저 불을 피워야만 했습니다. 불은 사냥한 동물을 익혀 먹기 위해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밤에 체온 유지를 위해, 그리고 위험한 동물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정말 불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농경·어업문화는 약해졌고, 산업·도시화가 확산하며 정월 대보름의 의미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목적이 풍요와 안녕을 빌기 위함이었다면, 이제는 액운을 쫓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합니다.

 

현재, 달집태우기는 날씨가 따뜻한 남쪽 지역에서 비교적 규모 있는 야외 행사로 열리고 있습니다. 특히, 정월 대보름 축제가 인지도 높은 축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에서 먼저,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 현대적인 요소도 가미해 모든 연령대가 축제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겠습니다.

 

최근 많은 사람이 더 짧은 콘텐츠, 더 짧은 영상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숏폼 콘텐츠 시청자가 국민 4명 중 3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숏폼의 지속적 성장과 변화가 예상되므로 정월 대보름 축제 행사에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숏폼 콘텐츠를 통해 축제의 특징과 매력을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축제 주최자나 참여자들은 숏폼 콘텐츠를 통해 축제의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와 지식, 문화와 예술, 도전과 게임, 유머와 감동 등을 제공하고,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무튼 올해도 그동안 쌓였던 걱정, 근심, 스트레스 등을 모두 모아 활활 타오르는 달집에 던져버리고, 새로운 희망과 행복이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Posted by neoisme